• 비가 많이 오는 날씨가 지속되면 유달리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장마철에는 무기력과 우울증 등으로 대학병원 외래 환자가 10% 더 늘어난다는 통계자료가 있을 정도입니다. 모든 생명체는 고유의 생물학적 리듬을 지니고 있는데, 뇌의 시하상부와 송과체는 낮과 밤, 식사, 날씨 및 신체의 변화 같은 자극에 대해 생체리듬을 조절해 평상 상태를 유지하도록 합니다. 하지만 급격한 자극으로 변화가 생기면 생체리듬에 혼란이 생겨 평상 상태의 균형이 깨질 수 있고, 장마철 우울증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매일 화창한 초여름 날씨를 보이다가 장마철에 접어들면 갑자기 잦은 비와 흐린 날씨로 일조량이 줄어들게 됩니다. 인체는 적당량의 햇볕을 쬐지 못하면 멜라토닌이라는 수면 호르몬 분비가 증가하면서 나른해지고 우울감이 심해집니다. 장마철 우울증을 호소하는 환자가 유독 많은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흔히 우울증은 불면증이나 식욕 저하 등의 증세를 많이 수반합니다. 그러나 장마철처럼 짧은 기간에 발생하는 '계절성 우울증'은 잠이 너무 많이 와서 하루 종일 무기력하게 누워 지내기 일쑤입니다. 식욕도 왕성해져 탄수화물 섭취가 늘어나 살이 찌게 됩니다. 물론 일반적인 우울증과 마찬가지로 기분이 우울해지고 원기가 없어지며 쉽게 피로를 느끼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고 의욕도 없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잠이 많아져 아침에도 제때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밖에 슬프거나 불안하며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활동력이 떨어지고 일의 능률도 오르지 않습니다. 재작년 미국 『사이언스 데일리』 지에는 책을 읽지 않는 학생보다 책을 많이 읽는 학생에게 우울증이 10분의 1로 적게 나타난다는 미국 피츠버그대 브라이언 프리맥 교수팀의 연구 결과가 실린 적이 있습니다. 책이 그 어떤 매체보다 인간의 영혼에 깊이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입니다. 우울이나 무기력, 혹은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 찾아온다면 책 한 권 품에 안고 한적한 카페로 가 보는 것을 어떨까요?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을 던져주고 현재의 우울과 무기력을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해 주는 몇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 링컨의 우울증
    조슈아 울프 솅크 지음 | 이종인 옮김 | RHK | 448쪽


    '역사 심리서'라는 장르를 통해 우울증이 링컨의 인생에서 왜 생겨났으며, 어떻게 진행되었고 그의 인품과 정치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 쓴 책입니다.
    내용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링컨의 우울증과 관련하여 3가지 중요한 질문에 대해 알아보고 있습니다. 1부에서는 링컨의 우울증이 발병한 과정을 추적하고 아울러 그것이 현대 정신의학의 진단 카테고리와 어떻게 부합되는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2부에서는 링컨이 자신의 우울증에 어떻게 대응했고, 그것을 치료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썼는지 알아보고 있으며, 3부에서는 링컨의 우울증이 그의 원숙한 성품, 사상, 행동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 "링컨은 고통의 시기에 자신의 하중을 덜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많은 짐을 짊어졌다. 죽어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으므로, 죽지 않고 살려면 어떤 인생의 목표를 가져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의 대답을 얻었고 그것은 평생 그를 지탱시켜 주는 힘이 되었다." (본문 89쪽)


  • 문제는 무기력이다
    박경숙 지음 | 와이즈베리 | 324쪽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며 양육과정이나 성격, 실패한 경험 등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배워버린 '학습된 무기력', 즉 '무의식 중에 배워버린 무기력'에 대해 말하고 있는 책입니다. 말하자면 학습된 무기력이란 피하거나 극복할 수 없는 환경을 반복적으로 경험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으로, 다른 상황에서 자신이 실제로 극복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으려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지과학자인 저자가 10년이 넘는 세월 동원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하는 자신의 심리를 분석하고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만성적인 무기력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이들, 특히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나 교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인 것 같습니다.

  • "의지를 갖고 임했는데 아무리 시도해도 변하지 않는 자신을 보며, 우리는 왜 자신이 변하지 않을까 답답해한다. 이제는 '새로운 시'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과거의 오래된 습관을 끝내는 단계를 밟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본문 164쪽)"


  • 이젠, 죽을 수 있게 해줘
    M. 스캇 펙 지음 | 조종상 옮김 | 율리시즈 | 344쪽


    사상가이자 정신과 의사, 작가기이도 한 저자는 이 책에서 인간이 죽음을 택하는 거의 모든 방식(살인, 자살, 안락사, 자연사 등)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죽음의 해부학을 펼쳐 보입니다. 주로 '안락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인생의 경험과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죽음의 전반적인 부분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삶이 그렇듯 죽음 또한 영혼의 성장을 위한 배움의 기회라고 생각하는 저자는, 늙고 죽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생존적 고통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죽이는 행위는 스스로 그 배움의 길을 막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죽음'을 개인적 차원에서만이 아닌 사회적 차원에서도 바라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과학적 범주와 영적 범주, 전문서와 대중서 사이를 줄타기하며 그는 결국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 그리고 '죽음 직전까지 우리의 영혼은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 "진정으로 큰 문제는 우리 사회가 안락사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갈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가 영혼과 영혼의 성장을 독려하는 사회를 원하는가의 여부다. 거의 모든 안락사 논쟁의 복합성은 결국 간단한 질문 하나로 해결될 수 있다. "우리는 영혼과 영혼의 성장을 독려하는 사회를 원하는가?"" (본문 343쪽)


  • 우울의 심리학
    수 앳킨슨 지음 | 김상문 옮김 | 소울 | 332쪽


    우울의 원인은 자존감의 훼손, 가까운 가족의 상실에서부터 고용 불안정에 대한 스트레스, 불확실한 미래에서 오는 불안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우울증을 더 이상 마음의 감기로 가볍게 치부할 수 없는 이 때, 우울증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은 더욱 절실합니다. 그러나 정신과의사나 심리치료사는 우울증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는 데에 한계가 있습니다. 이 책의 역자도 우울증 환자를 접할 때마다 "그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답답했음에 대해 토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우울증으로 오랫동안 고통 받았던 저자가 그 극복의 경험을 정리한 책입니다. 자신의 우울을 다른 이가 이해하지 못할 때의 쓸쓸함을 어루만져 주고 있습니다. 저자의 경험에서 나온 실제적인 도움의 말들이 저자의 진솔한 고백과 따뜻한 격려, 여성작가 특유의 세심한 지시사항들과 만나며 깊은 감동과 공감으로 다가옵니다.

  • "우울증 극복의 많은 부분은 우리의 내적 자아, 즉 우리의 참 가치를 발견하는 일과 관련이 있다. 자신의 참 가치를 발견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난 정말 세상에서 제일 대단한 사람이야"라고 이야기하는 자아도취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치 있는 존재로 받아들이는 참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본문 108쪽)


  • 굿바이 블랙독
    매튜 존스톤 지음 | 표진인 옮김 | 지식의 날개 | 60쪽


    영어사전에서 'black dog'의 뜻을 검색하면 '우울증'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검둥개'가 왜 우울증을 뜻하는 말이 되었을까요? 그 말의 유래는 영국 전 수상 윈스턴 처칠이 평생 안고 살았던 자신의 지독한 우울증을 '블랙독'(black dog)이라고 부른 데서 나왔다고 합니다. 한 나라의 수상이라는 위치에서 자신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음을 쉽게 드러내지 못해 '블랙독'이라는 애증이 섞인 별칭을 붙였다는 것입니다.

  • 처칠 이후로 블랙독이라는 표현은 우울증을 뜻하는 말로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쓰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책은 주인공이 '블랙독'에게 끌려 다니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결국 블랙독이 삶의 일부임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길들이고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짧은 글과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어 어려운 의학용어가 섞인 우울증 관련 도서가 부담스러울 때 편하게 읽어볼 수 있을 듯 합니다.